방수 재킷 스펙표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숫자
방수 재킷이나 텐트를 살 때 상세 페이지에서 꼭 보이는 숫자가 있어요. 바로 내수압 10,000mm, 20,000mm 같은 수치예요. 숫자가 클수록 방수가 잘 된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하지만, 두 배 차이가 실제 산에서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이번 글에서는 내수압이 무엇을 측정한 숫자인지, 어떤 상황에서 높은 내수압이 필요한지, 그리고 숫자만 보고 고르면 놓치기 쉬운 부분까지 정리해 볼게요.
내수압이란? 원단이 버티는 “물기둥의 높이”
내수압은 원단이 얼마나 높은 물기둥의 압력을 버티고 물이 새지 않는지를 나타낸 수치예요. 단위가 mm인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측정 방법을 단순하게 설명하면 이래요.
- 원단 위에 지름이 일정한 투명 관을 세워요.
- 관 안에 물을 조금씩 채워 물기둥을 높여요.
- 원단 반대편에 물방울이 스며 나오는 순간의 물기둥 높이를 기록해요.
즉, 내수압 10,000mm는 높이 10m짜리 물기둥의 압력을 버틴다는 뜻이에요. 20,000mm라면 20m 물기둥이죠. 실제 시험실에서는 이렇게 긴 관을 세우는 대신 기계로 수압을 점점 높이는 방식을 주로 써요. 한국산업표준(KS)과 국제 표준(ISO)에도 이 시험 방법이 정해져 있어요.
비는 그렇게 세지 않은데 왜 높은 내수압이 필요할까?
여기서 의문이 생겨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10m 물기둥만큼 센 압력을 줄 리는 없잖아요. 실제로 그냥 서서 비를 맞는 정도라면 내수압이 그리 높지 않아도 충분해요.
문제는 산에서는 원단에 압력이 가해지는 상황이 훨씬 많다는 거예요.
1. 배낭 멜빵과 허리 벨트
배낭을 메면 어깨와 허리 부분의 원단이 몸과 배낭 사이에서 꾹 눌려요. 젖은 원단이 눌리면 물이 원단 안쪽으로 밀려 들어가려는 힘이 생겨요.
2. 앉거나 무릎을 꿇을 때
젖은 바위나 땅에 앉으면 체중이 좁은 면적에 집중돼요. 흔히 인용되는 수치로는 젖은 땅에 앉을 때 약 2,000mm, 무릎을 꿇을 때는 1만mm 안팎의 압력이 생긴다고 해요.
3. 바람이 섞인 비
능선에서 강풍과 함께 비가 옆으로 몰아치면, 빗방울이 원단을 때리는 힘이 훨씬 세져요.
4. 오랜 시간 노출
몇 시간씩 비를 맞으면 원단이 계속 물에 잠긴 것과 비슷한 상태가 돼요. 짧은 소나기와는 조건이 전혀 달라요.
결국 높은 내수압은 “강한 비” 때문이 아니라 눌림, 바람, 시간이 겹치는 상황을 대비하는 숫자예요.
내수압별로 어떤 상황에 맞을까?
브랜드와 기관마다 기준은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기준은 다음과 같아요.
| 내수압 | 적합한 상황 |
|---|---|
| 5,000mm 이하 | 가벼운 비, 도심 산책, 짧은 외출 |
| 약 10,000mm | 일반적인 비, 당일 산행, 가벼운 배낭 |
| 20,000mm 이상 | 폭우, 장시간 산행, 무거운 배낭, 고산·능선 |
당일 산행 위주에 비 예보가 있는 날은 피한다면 10,000mm 정도로도 충분한 경우가 많아요. 반대로 비가 와도 산행을 이어가거나, 1박 이상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는다면 20,000mm 이상을 고르는 편이 안전해요.
숫자만 보면 놓치는 세 가지
1. 내수압은 “원단”의 수치일 뿐이다
내수압은 원단 조각을 시험한 결과예요. 실제 재킷에는 봉제선, 지퍼, 주머니, 후드 조임끈처럼 물이 들어올 틈이 많아요. 원단 내수압이 아무리 높아도 봉제선 테이핑(심실링)이 없거나 지퍼가 방수 처리되지 않았다면 그쪽으로 물이 새요.
2. 브랜드마다 측정 조건이 다를 수 있다
같은 20,000mm라도 어떤 시험 방법으로, 몇 번 세탁한 원단으로 측정했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요. 그래서 서로 다른 브랜드의 숫자를 1:1로 비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요. 대략적인 등급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보는 것이 좋아요.
3. 내수압이 높으면 투습은 떨어질 수 있다
방수를 높이려고 코팅을 두껍게 하거나 원단을 촘촘하게 만들면, 땀이 빠져나가는 투습 성능이 함께 떨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내수압만 보고 가장 높은 숫자를 고르면 오히려 안쪽이 땀으로 축축해질 수 있어요. 내수압과 투습도는 반드시 함께 봐야 해요.
내수압은 시간이 지나면 떨어질까?
네, 떨어질 수 있어요. 원단이 접히고 문질러지고 세탁을 거치면서 코팅이나 멤브레인이 조금씩 손상되기 때문이에요. 특히 배낭 멜빵이 닿는 어깨 부분처럼 마찰이 잦은 곳이 먼저 약해져요.
또 하나 헷갈리기 쉬운 것이 **발수 코팅(DWR)**이에요. 겉감 표면에서 물방울이 굴러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내수압이 떨어진 것은 아니에요. 발수 코팅이 약해진 것일 가능성이 크고, 이는 세탁과 재발수 처리로 어느 정도 되살릴 수 있어요. 이 부분은 6번 글에서 자세히 다룰게요.
자주 묻는 질문
Q. 우산의 내수압은 어느 정도인가요?
일반 우산은 비를 막는 것이 목적이라 압력을 받을 일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등산 재킷보다 훨씬 낮은 내수압으로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해요.
Q. 텐트도 내수압을 봐야 하나요?
네, 텐트에서는 특히 바닥이 중요해요. 바닥은 사람이 누르고 앉으면서 계속 압력을 받기 때문에, 보통 지붕(플라이)보다 바닥의 내수압이 더 높게 만들어져요.
Q. 내수압 표시가 없는 방수 재킷은 믿어도 되나요?
고어텍스처럼 자체 기준으로 완제품을 테스트하는 브랜드는 내수압 숫자를 따로 표시하지 않기도 해요. 숫자가 없다면 제품 설명에서 방수 등급이나 테스트 기준을 확인해 보세요.
내수압은 “어떤 상황까지 버티는가”의 숫자
내수압 10,000mm와 20,000mm의 차이는 단순히 “비를 두 배 잘 막는다”가 아니에요. 배낭에 눌리고, 젖은 바위에 앉고, 몇 시간씩 바람 섞인 비를 맞는 상황까지 버틸 수 있느냐의 차이예요. 내 산행 스타일을 먼저 떠올리고, 투습도와 봉제선 처리까지 함께 확인하면 숫자에 휘둘리지 않고 재킷을 고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