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에서 가장 위험한 날은 “추운 날”이 아니라 “젖은 날”
겨울 산이라고 하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는 맑고 추운 날을 먼저 떠올려요. 그런데 산에서 저체온증 사고가 자주 나는 날은 오히려 기온이 0도 안팎에서 진눈깨비나 비가 내리는 날이에요.
이유는 간단해요. 젖은 옷은 마른 옷보다 몸의 열을 훨씬 빨리 빼앗아요.저는 군 생활 할때 군복이 젖었을때 옷을 다 벗고 안 젖은 옷으로 내의만 갈아입은 뒤 양손으로 팔을 교차 시키면서 겨드랑이 쪽을 막았던 기억이 납니다.
왜 젖으면 추워질까? 두 가지 이유
1. 물은 공기보다 열을 훨씬 잘 전달해요
보온재는 섬유 사이의 공기층으로 열을 붙잡아 둬요. 그런데 이 공간이 물로 채워지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물은 공기보다 열을 약 25배 가까이 빠르게 전달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공기층이 물층으로 바뀌는 순간, 보온재가 오히려 열을 빼앗는 통로가 돼요.
2. 물이 마르면서 열을 가져가요
젖은 옷의 물기가 증발할 때 주변의 열을 흡수해요. 땀을 흘린 뒤 바람을 맞으면 갑자기 오싹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겨울 산의 바람까지 더해지면 체온이 떨어지는 속도는 더 빨라져요.
그래서 젖은 상황에서 좋은 보온재란 물을 적게 머금고, 젖어도 공기층을 유지하고, 빨리 마르는 소재예요.
소재별로 젖었을 때 무슨 일이 생길까
다운: 가장 따뜻하지만 가장 약하다
마른 상태의 다운은 무게 대비 보온력이 가장 뛰어나요. 하지만 젖으면 가느다란 털이 서로 달라붙어 공기층이 거의 사라져요. 한번 젖으면 산에서 다시 말리기도 어려워요.
최근에는 다운에 발수 처리를 한 발수 다운도 있어요. 습기에 조금 더 버티지만, 비에 흠뻑 젖는 상황까지 막아주지는 못해요.
합성 솜: 젖어도 버티는 안정감
폴리에스터 섬유는 물을 거의 흡수하지 않아요. 젖어도 섬유 구조가 크게 무너지지 않아 공기층이 어느 정도 남아 있고, 물기를 짜내면 빨리 말라요. 비 오는 날 입고 움직이는 보온재로 가장 믿을 만한 선택이에요.
울: 젖어도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 천연 섬유
울(특히 메리노 울)은 섬유 안쪽으로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요. 흔히 자기 무게의 약 30%까지 수분을 머금어도 겉은 비교적 보송하게 느껴진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래서 젖어도 피부에 차갑게 달라붙는 느낌이 적고, 어느 정도 보온력을 유지해요.
다만 물을 많이 머금으면 무거워지고, 합성 섬유보다 마르는 속도는 느린 편이에요. 울의 특성은 14번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룰게요.
플리스: 빨리 마르지만 바람에 약하다
플리스도 폴리에스터 섬유라 물을 거의 흡수하지 않고, 짜서 털기만 해도 금방 말라요. 젖은 상태에서도 보온력이 꽤 남아 있어요.
약점은 바람이에요. 섬유 사이가 성기게 열려 있어서 바람이 그대로 통과해요. 비바람이 부는 날 플리스만 입으면 열이 빠르게 빠져나가요. 반드시 방풍·방수 재킷을 위에 겹쳐 입어야 제 역할을 해요.
면: 겨울 산에서는 가장 위험한 소재
면은 물을 많이 흡수하고, 젖으면 섬유가 납작하게 눌려 공기층이 사라져요. 게다가 아주 느리게 말라서 젖은 상태가 오래 지속돼요. 산악인들 사이에서 “면은 산에서 위험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예요. 이 내용은 15번 글에서 따로 자세히 다룰게요.
한눈에 비교하기
| 소재 | 젖었을 때 보온 유지 | 건조 속도 | 마른 상태 무게 대비 보온력 | 바람 |
|---|---|---|---|---|
| 다운 | 매우 약함 | 느림 | 매우 높음 | 겉감에 따라 다름 |
| 합성 솜 | 강함 | 빠름 | 보통 | 겉감에 따라 다름 |
| 울 | 비교적 강함 | 보통~느림 | 보통 | 약한 편 |
| 플리스 | 비교적 강함 | 매우 빠름 | 보통 | 매우 약함 |
| 면 | 매우 약함 | 매우 느림 | 낮음 | 약함 |
비 오는 겨울 산을 위한 레이어 조합
소재 하나로 모든 상황을 해결할 수는 없어요. 각 소재의 장점을 층별로 나눠 입는 것이 가장 안전해요.
| 층 | 추천 소재 | 역할 |
|---|---|---|
| 베이스레이어 | 메리노 울 또는 흡습속건 합성 섬유 | 땀을 피부에서 떼어내기 |
| 미드레이어 | 플리스 또는 활동용 합성 보온재 | 움직이는 동안 체온 유지 |
| 아우터 | 방수·투습 재킷 | 비와 바람 차단 |
| 휴식용 보온 | 합성 보온재 재킷 (건조하면 다운) | 멈춰 있을 때 체온 유지 |
핵심은 땀으로 젖는 층과 비로 젖는 층을 모두 관리하는 것이에요. 베이스레이어가 땀을 빠르게 옮기고, 아우터가 비를 막고, 그 사이 보온층은 최대한 마른 상태를 유지하도록 조합해요.
젖지 않게 관리하는 습관이 소재보다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소재도 관리를 못 하면 젖어요. 비 오는 겨울 산에서는 다음 습관이 큰 차이를 만들어요.
- 땀을 덜 흘리기: 오르막 전에 미리 한 겹 벗고, 속도를 조절해요. 땀으로 젖은 옷은 비에 젖은 옷만큼 위험해요.
- 보온 재킷은 방수 주머니에 넣기: 배낭 안에서도 습기가 스며들 수 있어요. 휴식용 보온 재킷은 방수 주머니나 비닐에 따로 보관하세요.
- 멈추는 순간 바로 입기: 휴식할 때는 몸이 식기 전에 보온 재킷을 먼저 입어요. 다시 걷기 시작할 때 벗으면 돼요.
- 여벌 양말과 장갑 챙기기: 손발은 가장 먼저 젖고 가장 빨리 식어요. 마른 여벌 하나가 체감 온도를 크게 바꿔요.
자주 묻는 질문
Q. 비 오는 날에는 다운 재킷을 아예 가져가면 안 되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방수 주머니에 잘 보관했다가, 비를 피할 수 있는 대피소나 텐트 안에서 입으면 가장 따뜻한 선택이에요. 다만 비를 맞으며 입고 움직이는 용도로는 합성 보온재가 안전해요.
Q. 울과 합성 섬유 베이스레이어 중 무엇이 좋나요?
둘 다 좋은 선택이에요. 울은 젖어도 차갑게 느껴지지 않고 냄새가 덜 나요. 합성 섬유는 더 빨리 마르고 튼튼해요. 땀을 많이 흘린다면 합성 섬유, 여러 날 이어지는 산행이라면 울이 유리한 편이에요.
Q. 젖은 옷을 산에서 빨리 말리는 방법이 있나요?
합성 섬유와 플리스는 물기를 최대한 짜내고 입은 채로 움직이면 체온으로 비교적 빨리 말라요. 다만 체온이 이미 떨어진 상태라면 억지로 말리기보다 마른 여벌로 갈아입는 게 먼저예요.
겨울 산에서는 “젖어도 버티는 소재”가 생명줄
마른 날에는 다운이 최고지만, 비와 진눈깨비가 섞인 겨울 산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져요. 젖어도 공기층을 유지하고 빨리 마르는 합성 솜과 플리스, 젖어도 차갑지 않은 울이 몸을 지켜줘요. 반대로 젖은 면은 가장 위험한 선택이에요. 소재의 특성을 알고 층별로 나눠 입고, 보온층을 마른 상태로 지키는 습관까지 갖추면 비 오는 겨울 산에서도 훨씬 안전해져요.
그리고 하나 더! 꿀팁! 제가 겨울 산을 갈 때에는 오를 때 최대한 두껍게 입고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오를 때 땀이 장난 아니거든요! 그래서 중간 중간 쉴 때만 고어텍스로 열 손실을 방지하고, 다시 오를때 고어텍스 입고 5분간 산행을 한 뒤 열이 좀 발생 되었을때 다시 고어텍스를 벗고 산행을 합니다